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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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홍해 남쪽 예멘 앞바다에서 그리스 화물선(벌크선)이 후티 반군이 쏜 미사일에 맞았다. 이 선박은 화물을 싣지 않고 수에즈운하로 가다가 피격된 뒤 항로를 바꿨는데,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약간의 침수 피해만 발생했다.
후티 반군이 쏜 미사일은 대함(對艦) 순항미사일이 아니라 대함 탄도미사일이었다. 대함 탄도미사일은 순항미사일보다 속도가 빨라 요격이 어렵다. 후티 반군이 사용한 미사일은 이란 파타 330 탄도미사일을 대함용으로 개량한 것으로, 최대 사거리는 500㎞다. 이란과 끈끈한 커넥션을 갖고 있는 북한도 비슷한 대함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사일·드론 등 ‘복합 공격’
앞서 지난 9일 후티 반군은 예멘에서 홍해 남부 국제 해상 무역로를 향해 대함 탄도미사일은 물론 대함 순항미사일, 드론(무인기) 등으로 대규모 ‘복합 공격’을 감행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후티 반군과의 교전 뒤 “미 항모 아이젠하워함에서 발진한 FA-18 함재기, 미 해군 그레이블리 구축함 등과 영국 해군 다이아몬드 구축함이 (후티 반군이 발사한) 드론 18대, 대함 순항미사일 2발, 대함 탄도미사일 1발을 각각 요격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은 이에 대응해 지난 12∼13일 후티 반군 근거지를 대규모로 공습했지만, 후티 반군의 홍해 선박 공격이 계속되자 지난 22일 밤 후티 반군의 군사시설 8곳을 겨냥한 대규모 2차 공습을 벌였다. 하지만 후티 반군의 공격이 얼마나 약화될지는 미지수다. 후티 반군은 지난달 14일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연관된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한 뒤 지금까지 홍해를 지나는 선박 최소 10여 척을 공격하거나 위협했다. 여기엔 이스라엘과 무관한 선박도 포함돼 있어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홍해는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전체 상품 무역량의 12%를 차지하는 해상 교통로의 요충지로 우리나라의 의존도도 높다. 홍해에서 후티 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 상선 피해가 속출하자 다국적 함대도 추진되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 장관은 지난 19일 40여 국과 장관급 화상회의를 열고 홍해 항로에서 민간 선박을 보호하는 다국적 함대에 기여할 것을 촉구했다. 오스틴 장관은 앞서 성명을 통해 홍해 안보에 중점을 둔 다국적 안보 구상인 ‘번영의 수호자 작전(Operation Prosperity Guardian)’ 창설을 발표했다. 미국·영국·바레인·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노르웨이·세이셸·스페인 등이 참여해 홍해 남부와 예멘과 가까운 아덴만에서 합동 순찰 등 공동 대응에 나선다는 것이다.
◇청해부대 대함미사일 방어 능력 강화 필요
이에 따라 소말리아 아덴만에 파견돼 있는 우리나라 청해부대 전력을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청해부대에는 41진으로 광개토대왕급(DDH-Ⅰ) 한국형 구축함인 양만춘함이 파견돼 있다. 지난 2009년 창설된 청해부대에는 광개토대왕급보다 큰 충무공이순신급(DDH-Ⅱ) 구축함 1척이 줄곧 파견됐지만 현 정부 들어 대북 대응 위주 정책에 따라 40진부터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을 파견하고 있다.
3200t급 구축함인 양만춘함은 대함미사일과 함포, 헬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대함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수단은 시스패로 단거리 함대공미사일(최대 사거리 19㎞)과 30㎜ 기관포(골키퍼)밖에 없다. 이들은 사거리가 짧아 멀리 떨어진 우리 민간 선박을 상대로 한 대함미사일 공격은 막기 어렵다.
반면 충무공이순신급(4400t급)은 광개토대왕급보다 훨씬 강력한 대함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고 있다. 근접 방어 무기로 골키퍼 기관포와 RAM 미사일을 갖추고 있고, 최대 사거리가 167㎞에 달하는 SM-2 블록ⅢA 함대공 미사일 32기도 탑재하고 있다. 미 해군 함정들이 홍해에서 후티 반군의 미사일과 드론을 요격하는 데 주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SM-2 미사일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해선 해군력 강화 등 군사적인 대책과 함께 해운 조선 산업 육성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해운사 대표는 “일본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선박 건조량에서 한국에 추월당했는데, 일본 조선 산업의 실패는 물론 항해사·기관사 등 해기(海技) 인력 양성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가 우수한 해양 기술 인재를 육성해 해운 산업을 발전시킨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을 모델로 우리도 해양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티 반군들의 잇따른 홍해 통과 민간 선박 공격으로 선박 보험료가 급등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항로로 변경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보험사들이 현재 홍해를 지나는 선박들에 대해 선박 가액의 0.75∼1.0% 상당의 전쟁 위험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면서,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10분의 1 수준이었다고 보도했다. 1억달러(1300여 억원)짜리 선박에 대해 1%의 전쟁 위험 보험료를 부과할 경우, 홍해를 지나는 데 보험료로만 100만달러(13억여 원)가 든다는 얘기다.
로이터통신도 1월 초까지만 해도 전쟁 관련 위험 프리미엄(웃돈)이 선박 가액의 0.7%였지만, 1월 중순 현재 1%가량으로 올랐고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컨테이너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도 최근 2개월간 106.6%나 증가했다.
비용과 안전 문제 때문에 홍해-수에즈운하 항로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유럽까지 홍해-수에즈운하 항로로 이동할 경우 거리는 1만5700㎞로 35일이 걸린다. 하지만, 희망봉 항로를 활용할 경우 거리는 2만2000㎞로, 소요 일수는 44일로 늘어난다.
국내 해운업체 고위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 지난달부터 배들을 모두 희망봉 항로로 우회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상 교통로가 차단되면 나라가 주저앉게 되는데 누구한테 의존할 사안이 아닙니다.”
최윤희<사진>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장(전 합참의장)은 최근 홍해 사태와 관련, 지난 22일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의 생명선인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한 독자적인 해양력 강화와 컨트롤 타워(사령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7%가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있다”며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해상 교통로가 차단될 경우 하루에 5조5000억원의 총산출 감소와 1만6000명의 고용 감소가 초래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해상 교통로 보호가 중요한데 이는 미국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두 전쟁에 발목 잡힌 미국이 대신 해상 교통로를 지켜줄 수 없다”며 “이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적용되는 사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해선 기동함대 건설 등 해군력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최 회장은 강조했다. 기동함대는 2030년대 중반까지 구축함 18척으로 편성된 3개 기동전대로 만들어질 계획이다.
청해부대로 파견됐던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6척, 세종대왕급·정조대왕급 이지스함 6척, 차기 한국형 구축함(KDDX) 6척 등으로 구성된다. 최 회장은 “군사력 건설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기동함대 전력 보강 계획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홍해 사태 등으로 해양 안보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통수권자가 신속하게 파악하고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채널이 사실상 없다”며 “지난 정부에서 없어진 해양수산비서관이라도 부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1993년 이후 줄곧 30년간 국방부를 출입, 우리나라 최초이자 현직 최장수 군사전문기자로 꼽힙니다. 누적 방문자 4억2000만명을 돌파한 대한민국 최대의 군사안보 커뮤니티인 ‘유용원의 군사세계’를 비롯, 유튜브(구독자 25만명), 페이스북(팔로워 6만8000여명), 네이버TV, 인스타그램 등 7개의 개인 채널을 운영하며 많은 분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