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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호르무즈의 경고…해양 교통로 수호, 국가 명운 달린 일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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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해양연맹 총재·전 합참의장

최윤희 해양연맹 총재·전 합참의장

 

지난주 말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노딜’로 끝나며 호르무즈해협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이란은 전쟁 발발 직후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했는데, 종전 협상이 결렬되자 미국이 이란과 거래하는 선박의 운항을 막는 역봉쇄에 나서면서다.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출길을 막으면서 압박에 나선 것이다. 이 지역에 발이 묶인 우리 선박 26척은 하루 143만 달러(약 21억 3000만원)의 손실을 보고 있지만, 운항 재개 여부는 미지수다. 이러는 사이 유가와 환율, 증시는 물론이고 어업 활동을 하고 있는 어선들이 조업을 멈추는 등 전쟁의 여파가 확산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 역봉쇄로 호르무즈 안갯속
북 핵잠 보유 땐 해로 교란 가중
200척 이상의 전략상선대 구성
업계 포함해 범정부적 노력을

 

이란의 테헤란 광장에 “호르무즈해협은 여전히 봉쇄돼 있다”는 문구가 적힌 대형 선전판이 설치돼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의 테헤란 광장에 “호르무즈해협은 여전히 봉쇄돼 있다”는 문구가 적힌 대형 선전판이 설치돼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내 유가가 급격하게 상승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원성이 커지는 분위기지만 대책은 마땅치 않아 보인다. 이란은 유엔 해양법 협약 당사국이 아니어서 이란의 해협 봉쇄 행위를 국제법으로 강제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항해가 미국의 목표가 됐다. 전쟁이 장기화하며 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거치며 이제 지구촌 어느 한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지역 분쟁의 개념을 넘어서고 있음을 실감한다.

 

해상 보호 작전 패러다임 전환
호르무즈 사태는 지난 2024년 3월 민간 상선을 대상으로 한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 이후 해상 교통로 보호 작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기존에는 해적이 상선에 위협이었지만 이제는 봉쇄와 미사일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국은 후티 반군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2개월에 걸쳐 미사일 발사 기지를 타격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결국 미국은 40여 개국이 참가하는 다국적 연합해군(CMF·Combined Maritime Forces)을 구성했다. 그러나 광활한 바다에서 CMF 전력으론 한계가 있다. 한국은 2009년 아덴만에 구축함 1척(청해부대)을 보내 해적으로부터 상선 보호 작전을 펼치고 있지만 드넓은 해양에서 한계가 있다. 세계 10위권인 한국의 경제력을 고려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어떻게 결론 날지 당장 판단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현재까지 전개된 상황만으로도 우리가 교훈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날로 위협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 이익을 보호하려면 해상 교통로 확보와 보호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매년 국회에서 청해부대 파병 연장 심의를 받을 때마다 애를 먹는 수준으로는 곤란하다.

호르무즈해협의 통항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초크 포인트(해상운송의 병목)를 보유한 국가들이나 테러 집단이 이를 활용할 수 있다. 특히 핵잠수함을 개발 중인 북한이 한반도 해상 봉쇄에 나설 수도 있다.

 

생명선인 해상교통로
이런 와중에 미국은 호르무즈 봉쇄를 푸는 건 각국이 알아서 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국적의 상선 보호와 한반도의 해상 안보를 동시에 챙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전 세계를 누비는 한국 선박들은 10여 개의 국제 항로를 이용한다. 이 가운데 호르무즈해협을 비롯해 수에즈운하, 파나마운하, 바브엘 마데브해협(홍해), 말라카해협, 대만해협 등은 언제든 갈등이 벌어질 수 있는 초크 포인트다. 선박의 운항 시간이나 거리 등 경제성 측면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수출입 물동량은 99.7%를 바닷길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는 전량 해상 교통로를 이용 중이다. 해상 교통로가 생명선인 셈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초크 포인트를 관리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그나마 냉전 후 미국의 조선과 해운 산업이 쇠퇴하며 무너진 미국 주도의 국제 해양 질서에만 기댔던 우리의 대비가 충분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안타깝게도 위중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만 우리는 유사시 전쟁과 전략물자를 수송할 선단과 보호 대책마저 없다. 심지어 한·미 연합 작전계획에도 전시 물자의 운송은 미국이 맡도록 돼 있다.

 

무엇보다 우리 수출입 물동량의 40%가 통과하는 대만해협의 분쟁 가능성도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공격을 받은 이란이 중동 여러 국가들을 공격한 것처럼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일본에 있는 유엔군사령부 후방 기지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반도 유사시 북·중·러가 결탁해 한반도를 봉쇄한다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이다. 북한은 최근 1200㎞ 이상을 날아가는 장거리 순항 미사일을 탑재한 5000t급 구축함을 건조하는 등 대양 작전 능력을 확충하고 있다. 여기에 핵 추진 잠수함을 보유한다면 한반도를 벗어나 어디에서든 해상 교통로를 교란할 수 있다. 전시와 평시에 해상 교통로를 확보하고 보호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전·평시 해상 수송 체계 확립을
우리의 생명선인 해상 교통로를 수호하기 위해선 범정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최소 200척 이상의 전략 상선대를 구성해 이를 중심으로 한 동원 선박 제도를 철저히 갖춰야 한다. 실효적인 동원 선박 제도를 위해서는 합당한 정부 재정 지원이 따라야 한다. 또 평시 초크 포인트와 유사시 대만 해협에서 상선을 보호할 수 있는 군사·외교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대만해협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비해 한·미·일과 호주, 동남아 국가들이 함께하는 다국적 대응 체계가 작동하도록 미리 협의하고, 훈련을 해둬야 한다. 핵 추진 잠수함을 포함한 획기적인 해군력 증강은 필수다. 군함의 건조 계획 수립과 설계 및 개발, 건조에 적어도 20년 이상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시간이 없다.

 

우리에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미국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에 그런 기대를 할 수도 없다. 해양 자강을 통해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해운업계와 해군이 함께 하는 전·평시 해상 수송 체계 확립은 국가 명운이 걸린 사활적 과제다.

 

최윤희 해양연맹 총재 전 합참의장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9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