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연맹소식

"할아버지 흘린 피 헛되지 않게 해줘 감사"

2025.11.11

11

6·25 참전용사 후손·참전국 출신
외국인 17명, 진해 해군기지 방문
부산 유엔기념공원 찾아 묵념도

캡처.JPG

 

8일 오후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콜롬비아 참전 용사의 후손 5명이 추모비에 헌화하고 있다. 비석엔 ‘자유를 위한 콜롬비아 사람의 죽음은 그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할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한국을 지켰습니다. 할아버지에 이어 한국의 바다를 지키는 해군 장병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지난 7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던 잠수함 ‘장보고함(1200t급)’에 외국인 17명이 차례로 들어갔다. 프랑스·캐나다·에티오피아 등에서 온 이들은 6·25전쟁 참전 용사 후손이거나 참전국 출신이다. 약 4m 길이 사다리를 타고 군함 안으로 내려간 이들은 원통형 어뢰 발사관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최대 며칠 동안 잠수할 수 있나” “총 몇 발의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한참 이어졌다.

한국전쟁 참전국 기념사업회와 대한민국해양연맹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해군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한국 유학 중인 미국·콜롬비아·튀르키예 같은 전투병 지원국을 비롯해 스웨덴 등 의료·물자 지원국 후손들도 참여했다. 한전MCS, 한국늘사랑회, 헤세드코리아 등이 행사를 후원했다. 참전용사 후손들은 “우리 선조들이 지켜낸 한국과 인근 해양을 수호하는 해군의 모습을 눈으로 보니 남 같지 않다. 선조들이 흘렸던 피가 실감 난다”고 했다.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영어교육 전문가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콜롬비아인 스테파니 아르구에조 가오나(33)씨는 “잠수함은 겉보기엔 거대했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비좁았다”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해군 장병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고 했다. 그의 할아버지 산티아고 가오나 카데나(91)씨는 김화 400고지 전투 등을 치르는 등 1951년 6월부터 약 1년간 한국에서 복무했다. 1952년 10월 수류탄 파편을 맞아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당해 같은 해 12월 콜롬비아로 귀국했다. 가오나씨는 “할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아리랑’을 완벽하게 기억해 부른다”며 “할아버지처럼 나도 한국에서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겠다”고 했다.

다음 날 오후 이들은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각국 묘역 앞에서 묵념했다. 20대 젊은 나이에 전사한 각국 참전 용사들의 묘비석 위에 흰 국화꽃이 놓였다. 인천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의 아들 페트로스 하일레마리암 비주네(44)씨는 4만896명 전사자의 이름이 적힌 명비를 보고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 이름 중에 아버지 전우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며 “이들의 희생과 용기가 얼마나 크고 우리가 이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조선일보  강지은 기자 

 

https://www.chosun.com/national/people/2025/11/11/GK2WU4WQMRBPVI5EEWZ4HPUVE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