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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주한미군 규모·역할, 모든 변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202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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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한국해양연맹 총재·전 합참의장

최윤희 한국해양연맹 총재·전 합참의장

 

한·미 연합방위체제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위하는 근간이다. 유엔군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전시작전통제권, 한국군, 주한 미군 등은 이를 수행하는 핵심주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연합방위체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덴 콜드웰 전 미 국방장관 수석고문 등이 작성해 어제 공개한 보고서엔 주한미군의 지상 전투병력 대부분과 2개 전투비행대대를 철수하고, 2만8500명인 병력 규모를 1만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앞서 국방 분야에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지휘하고 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은 지난 3월 “미국은 북한과 큰 충돌에 휘말릴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이후에도 미국에선 주한 미군의 역할 변화, 전작권 전환,  방위비 증액과 관련한 언급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서울에 있는 유엔사를 일본으로 옮기고 사령관도 주일 미군 장성으로 바꾸려 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하나같이 우리의 안보 태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새삼 6·25전쟁 직전 미국이 한반도를 극동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 이 떠오른다. 자칫 북한의 오판을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반도 지정학 가치 커졌는데도
1만명으로 감축 주장까지 나와
전작권 환수로 연결될 수 있어
한 치 앞 내다보는 지혜 짜내야

 

중국 해양력 견제 힘 부치는 미국

한·미 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S·프리덤실드) 연습이 실시된 지난 3월 10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아파치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한·미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대규모 연합훈련에서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의 전술 변화를 시나리오에 반영했다. [뉴시스]
한·미 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S·프리덤실드) 연습이 실시된 지난 3월 10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아파치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한·미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대규모 연합훈련에서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의 전술 변화를 시나리오에 반영했다. [뉴시스]

 

최근 미국의 움직임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버거워 우리를 도울 여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중국의 해양 팽창 정책이 미국의 전략적 핵심 가치인 해양 통제권을 위협하고 있다. 또 새로 출범한 한국 정부를 길들이려는 차원일 수 있다. 정권 교체 때마다 달라지는 우리의 대미·대중 정책에 미국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 장관이 지난 5월 31일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없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최우선 정책 과제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미국 입장에선 과거에 비해 역량이 약화했고, 국제 환경 변화로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반면, 중국은 해양 팽창 정책을 펼치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12개국에 항만을 건설해 조만간 군사기지로 만들어 전 세계 바다의 통제권을 노리고 있다. 중국은 해양 영유권 주장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남중국해에 이미 12개의 인공섬을 건설했고 서해에도 인공구조물을 설치 중이다.

 

중국의 성장에 반해 미국의 해양 세력 약화는 옛 소련이 무너진 뒤 레이건 행정부의 조선·해운 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 중단이 화근이다. 전 세계의 해양을 호령하며 패권을 유지하던 근간이었던 미국의 조선 산업은 후퇴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조선과 해운 협력을 손짓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제 기능을 하는 조선소는 5개 안팎에 불과한 반면, 조선업 육성에 매진했던 중국의 조선 능력은 미국의 230배에 이른다. 2020년대 초 통계에 따르면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상선대의 숫자는 미국 82척, 중국 7000척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사태가 발생하면 치명적이다. 필자는 지난 5월 HD현대중공업을 방문한 존 펠런 미 해군성 장관을 수행하며 미국 해운 세력의 쇠퇴로 인한 심각성을 실감했다. 미국은 신 해양전략(SHIPS ACT)을 세워 열세를 만회하려 하지만 무너진 조선 기간 산업을 부활시키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 그 공백을 우리의 조선 능력으로 메우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이다. 우리에겐 기회다. 미국과 안보·관세 협상 등에서 중요한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버틸 각오해야
동시에 미국 우선주의에 적응하기 위한 우리의 정책은 한 치 앞을 더 내다봐야 한다. 우리의 국방비를 인상하고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미국의 압박이 주한미군 주둔비만을 염두한 게 아닐 수 있어서다. 스티븐 조스트 주일미군사령관이 지난달 28일 일본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주일미군사령부가)향후 몇 년간 지휘 권한을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언급에 힌트가 있다. 그는 한·미 연합사령부의 일본 이전 가능성도 언급했다. 1950년 7월 채택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문(제84호)에는 유엔사령부와 사령관의 위치와 관련한 조항은 없다. 그러나 사령부를 일본으로 옮긴다는 건 유엔사가 한반도의 정전 관리나 북한의 억제를 넘어 지역 관리에 치중하겠다는 의미다. 북·중·러와 한·미·일 대립 구도가 극명해지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더욱 커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분명 올바른 판단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의 판단이나 희망과 달리, 일방주의라는 비난 속에서도 자신의 입장에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애치슨 라인뿐만 아니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고조되던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아시아 각국은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는 독트린(괌 선언)을 선언하며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시킨 적도 있다. 필자는 2015년 한·미 연합작전계획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획 문서를 만들면서도 우리의 의지를 주도적으로 반영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절감했다.

 

어쩌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모든 힘을 끌어모아 중국 견제에 전력투구하는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자연히 전작권을 한국으로 이양하는 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다. 전작권 환수는 필자가 합참의장으로 재직할 때 중점적으로 검토했던 사안이다. 노무현 정부는 2012년에 전작권을 환수하는, 시기에 기초(Time Based)한 전작권 전환을 추진했다. 그러나 한반도 안보환경과 한국군의 환수 준비 상황이 여의치 않자 한·미는 2014년 한국이 일정한 조건을 갖춘 뒤 전작권을 환수하는 ‘조건에 기초한(Condition Based)’ 전환으로 원칙을 수정했다. 한·미가 합의한 3가지 조건은 ▶연합방위를 위한 충분한 군사적 능력 확보 ▶동맹의 포괄적인 북한 핵미사일 대응능력 확보 ▶전환 조건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 환경 조성이다. 이 조건들은 어느 것 하나 달성하기 쉽지 않은 어렵고 막연한 조건들이다.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이 부분은 특히 난감한 과제다. 이와 관련 지난 4월 존 대니얼 케인 미 합참의장이 청문회에서 “아직은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은 한국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한국이 미국만 쳐다보고 있을 순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게 유비무환의 자세다.

 

최윤희 한국해양연맹 총재·전 합참의장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0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