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연맹소식

자유의 대가 잊지 않으려… 트루먼, 6·25 유족 항의편지 평생 간직했다

202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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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이 만난 사람]
'이승만·트루먼 전시실' 개관식 참석
트루먼 대통령 손자 클리프턴 대니얼

 

 

용산 전쟁기념관에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의 훈장과 그 아버지 윌리엄 베닝의 항의편지를 기증한 클리프먼 트루먼 대니얼씨. 그는 "할아버지는 자유의 무거운 대가를 잊지 않기 위해 편지와 훈장을 자신의 서랍에 평생 간직했다"고 전했다. 2025.6.24 /박성원 기자

용산 전쟁기념관에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의 훈장과 그 아버지 윌리엄 베닝의 항의편지를 기증한 클리프먼 트루먼 대니얼씨. 그는 "할아버지는 자유의 무거운 대가를 잊지 않기 위해 편지와 훈장을 자신의 서랍에 평생 간직했다"고 전했다. 2025.6.24 /박성원 기자

 

미국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 있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 박물관에는 보라색 훈장(퍼플 하트)과 편지 한 통이 놓여 있다. 한국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국가가 준 훈장을 반납하며 트루먼 대통령에게 쓴 항의 편지다. “당신은 내 아들이 한국에서 목숨을 잃은 데 직접적 책임이 있는 만큼 이 상징물을 전시해 기념하라. 가장 애석한 점은 당신 딸은 그곳에 없었기에 우리 아들이 한국에서 당한 일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의 손자인 클리프턴 트루먼 대니얼(68)은 “할아버지는 자유가 얼마나 무거운 대가를 치르는지 잊지 않기 위해 이 편지와 훈장을 평생 간직했다”고 했다. 지난주 용산 전쟁기념관에 들어선 ‘이승만·트루먼 전시실’에 훈장과 편지를 기증한 대니얼씨는 “수많은 군인의 희생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의 오늘을 할아버지가 보셨다면 깊이 감격했을 것”이라고 했다. 저널리스트이며 배우인 대니얼은 트루먼 대통령의 무남독녀인 마거릿의 장남이다.

◇ 다부동에서 만난 할아버지

-이승만·트루먼 동상이 나란히 선 경북 칠곡 다부동 전적지에 다녀왔다더라.

“내가 열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할아버지와 꼭 닮았더라.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놀랐다(웃음).”

-두 대통령 동상이 세워진 뒤 전적지 관람객이 5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역대 최저 지지율로 퇴임한 대통령인데, 가장 큰 이유가 6·25전쟁 파병이었다. 따라서 내 유년 시절 ‘트루먼의 손자’라는 사실은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웃음). 퇴임 후 20년이 지나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더라. 한 록밴드가 1973년 ‘해리 트루먼’이란 싱글 앨범을 내고 ‘미국은 트루먼 대통령이 필요해’라고 노래했을 만큼! 지금은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10명 중 한 분으로 꼽힌다. 한국에서도 할아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 기쁘다.”

-미국 내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트루먼은 왜 파병을 결정했을까?

“간단하다. 어떤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침공했다는 사실부터 할아버지를 매우 화나게 했을 것이다. 또한 소련과 중국의 참전으로 공산주의 독재가 한반도를 포함해 제3세계로 확장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 개입을 결정하셨다고 생각한다.”

-트루먼은 10초 만에 참전을 결정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회고록에는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를 승인한 것보다 한국전쟁 파병 결정이 더 어려웠다’는 대목이 나온다.

“할아버지의 단호한 성격에 원폭 투하나 파병 결정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힘들게 한 건 결정을 내린 뒤 겪어야 했던 후폭풍이었다. 6·25만 해도 영국 총리는 참전 5개월 만에 철수하자는 제안을 강력하게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미국은 친구가 어려울 때 버리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을 포기하면 우리를 믿고 싸웠던 이들은 죽게 될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할아버지는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내린 파병 결정이 자신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하셨다.”

-전쟁 소식을 들은 트루먼의 일성이 ‘그 개자식들(son of bitch)을 혼내줘야 한다’였다던데.

“할아버지의 과격한 모습은 내 기억 속에도 더러 있지만, 욕을 들어본 적은 없다(웃음). 다만 ‘할아버지다운’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공정(fairness)을 매우 중시했고, 약자를 괴롭히는 깡패들(bullies)을 경멸했다.”

한국전쟁 75주년이었던 지난 6월 2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 세워진 해리 트루먼 대통령 동상 앞에 헌화하고 있는 손자 클리프턴 트루먼 대니얼씨. /대한해양연맹

한국전쟁 75주년이었던 지난 6월 2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 세워진 해리 트루먼 대통령 동상 앞에 헌화하고 있는 손자 클리프턴 트루먼 대니얼씨. /대한해양연맹

 

◇ 맥아더를 미워한 트루먼?

-한국인 중에는 전쟁 중 맥아더를 해임한 트루먼을 원망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할아버지는 맥아더 장군을 존경하고 높이 평가했다. 인천상륙작전과 북진 작전도 합심해 성공시켰다. 그러나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의견이 엇갈렸다. 맥아더는 만주에 핵무기를 투하해야만 전쟁을 이긴다고 주장했지만 할아버지는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

-맥아더가 대통령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열받아 해임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존중 문제와는 별개다. 맥아더 장군은 공적인 자리에서 핵무기 발언을 계속했고, 그로 인해 오도된 메시지가 미군과 연합군은 물론 소련·중공군에도 퍼져나가자 할아버지는 해임을 결정하셨다.”

-트루먼은 마셜 플랜, 나토 창설로 냉전 시대 미국 패권의 틀을 만든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소명은 모든 인류의 자유와 진보를 위한 원천이 돼야 한다’고 한 그의 신념은 트럼프 시대에도 유효할까?

“1차 세계대전 때 포병 장교로 참전한 할아버지는 전범국 독일이 처절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폐허가 된 독일을 히틀러가 장악한 뒤 다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적국을 멸망의 길로 몰아붙이면 보복을 불러일으키고 그 때문에 또다시 전쟁을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마셜 플랜으로 한때 적국이었던 나라들의 재건을 도우며 동맹을 넓혀 나가는 방식을 택한 이유다. 지금도 미국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6·25 전쟁 파병을 결정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4일 전쟁기념관에 개관한 '이승만 트루먼 전시실' 앞에서 클리프턴 트루먼 대니얼(왼쪽에서 넷째)씨가 아내, 아들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6·25 전쟁 파병을 결정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4일 전쟁기념관에 개관한 '이승만 트루먼 전시실' 앞에서 클리프턴 트루먼 대니얼(왼쪽에서 넷째)씨가 아내, 아들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 고졸 학력의 시골뜨기 정치인

-사후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트루먼 리더십의 핵심은 뭘까?

“항상 옳은 일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일기에 아주 인상 깊은 기도 제목이 적혀 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저에게 알려달라’는 기도였다.”

-트루먼은 고졸 학력에 시골 출신 정치인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얼떨결에 대통령직을 승계한 트루먼은 어떻게 세계사에 남을 중대한 결단을 여러 번 내릴 수 있었을까?

“그는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어느 기자가 할아버지 서재를 보고 ‘대통령님은 잠자기 위해 책을 읽느냐고 농담하자 나는 깨어 있기 위해 읽는다’고 답한 분이다(웃음). 손자들에겐 역사 공부를 특히 강조하셨다. 하루는 우리 집에 오셨다가 TV를 보고 있던 나와 남동생을 보고 즉시 도서관으로 데려가셨다. 그때 할아버지가 건넨 책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다. 내가 겨우 네 살 때였다, 하하!”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The Buck Stops Here!)’는 문장은 트루먼 대통령 집무실에 놓인 명패의 문구로 유명하다.

“루스벨트 사망 소식에 할아버지는 ‘달과 별과 모든 행성이 내게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탄식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고 소련·중국과 냉전이 시작된 시대에 할아버지는 자신의 결정으로 미국과 세계의 운명이 좌우되리라는 생각에 중압감을 받으셨다. 명패는 친구가 선물한 것인데,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그 문구를 보며 마음을 다스리지 않았을까?”

-CNN의 래리 킹은 ‘트루먼이 언변가는 아니지만 탁월한 커뮤니케이터였다’고 평가했더라.

“할아버지는 고지식한 분이었지만 원칙을 지키며 누구에게나 자기 생각을 명쾌하게 전달하셨다.”

-가족과도 잘 소통했나?

“손자들에겐 아주 심플했지. ‘안 돼(No)!’ ‘거기서 멈춰(Stop there)!’(웃음)”

24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클리프먼 트루먼 대니얼은 "역사 공부를 강조한 할아버지 트루먼 대통령은 4살 손자에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건넨 분"이라며 웃었다. 2025.6.24 /박성원 기자

24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클리프먼 트루먼 대니얼은 "역사 공부를 강조한 할아버지 트루먼 대통령은 4살 손자에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건넨 분"이라며 웃었다. 2025.6.24 /박성원 기자

 

◇ 10초 만에 참전 결정한 ‘친구’

-트루먼 대통령 박물관에 가면 ‘트루먼은 잘했나, 잘못했나?’라는 주제로 관람객 의견을 받는 코너가 있다고 한다.

“어떤 대통령도 완벽하지 않다.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모두 공유해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업적만 내세우고 실수는 건너뛴다면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없다.”

-원자폭탄 투하는 트루먼이 가장 잘못한 일 중 하나일까?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원폭을 투하한 건 종전을 앞당겨 사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 오펜하이머에게도 원폭 투하 책임은 전적으로 대통령인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물론 할아버지는 그 죄책감을 평생 갖고 살아야 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선 게리 올드먼이 트루먼을 연기했다.

“그는 뛰어난 배우지만 해리 트루먼 연기는 훌륭하지 않았다. 차라리 나에게 부탁해야 했다(웃음).”

-미국 역대 대통령후손협회 부회장이던데, 뭘 하는 곳인가?

“대통령 리더십에 관한 도서상을 2년에 한 번 수여하고, 서로 기념관을 방문하며 교류한다. 미국 사회도 굉장히 분열돼 있는데, 선대 대통령들이 남긴 전통과 유산을 계승해 통합된 사회로 가는 데 도움이 되려고 한다.”

-후손들이 만나면 우리 할아버지가 더 훌륭했다며 싸우지 않나?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트루먼과 아이젠하워는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었지만, 트루먼 손자인 나와 아이젠하워 손녀는 엄청나게 친하다(웃음).”

-할아버지가 대통령이었다는 걸 어릴 땐 몰랐다던데.

“초등학교에 간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데 내가 ‘클리프턴입니다’ 하고 앉았더니 선생님이 ‘더 할 말 없니? 할아버지가 대통령 아니었니?’ 하시더라.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물으니 ‘그 어떤 사람도 대통령 손자가 될 수 있으니 깊이 생각할 것 없다’고 하시더라(웃음).”

-성악가였던 딸 마거릿의 공연을 한 평론가가 혹평하자 아버지인 트루먼이 ‘날 만나면 당신 눈에 멍이 들 것’이라며 화를 냈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다.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발언은 아니었지만 백악관에 도착한 편지엔 ‘아버지다운 발언이다. 인간미가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는 노래를 그만두고 미스터리 소설가가 되셨다(웃음).”

-한국 대통령이 그랬다면 탄핵감인데.

“오, 그런가? 오히려 할아버지와 평론가는 그후 아주 좋은 친구가 됐다.”

-한국인들이 트루먼을 어떤 인물로 기억하길 바라나?

“좋은 친구! 10초 만에 참전을 결정한 좋은 친구!(웃음)”

☞클리프턴 트루먼 대니얼

1957년 뉴욕 출생.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뒤 저널리스트, 배우, 핵 반대 운동가로 활동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외동딸 마거릿의 장남으로 트루먼 도서관재단 명예회장, 트루먼 장학재단 이사회 총장, 미국 대통령후손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연극 ‘Give ‘Em Hell, Harry!’와 영화 ‘Second Samuel’에서 트루먼 대통령을 연기했다. ‘할아버지와 함께한 성장기: 해리 S 트루먼의 기억’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