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의 퍼스펙티브] 중국 “동경 124도 서해 넘어와 작전하지 말라”

동북아 해상에 이는 격랑

바다는 낭만과 평화의 상징이다.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고 쌓였던 시름이 파도와 함께 사라진다. 적어도 일반인에겐 그렇다. 그러나 정작 바다가 삶의 터전인 사람에겐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오랜 세월 바다에서 근무한 필자는 태풍이나 큰 파도를 만나면 그저 두렵기만 했다. 그런데 바다의 위협은 자연보다 인간이 만든 게 훨씬 크다. 역사에서 바다의 가치를 인식해 적극적으로 활용한 나라는 세계 패권국이 됐다. 반대로 바다를 등한시해 참담한 아픔을 경험한 나라들도 있었다.

지정학적으로 대한민국은 바다에 흥망이 걸린 해양국가다. 국가가 흥하고 힘이 있을 땐 밖으로 뻗어 나갔다. 그러나 쇠퇴할 땐 바다로부터 오는 외침부터 걱정해야 했다. 지금 한반도 주변에는 세계 해군력의 60%가 집결돼 있다. 그리고 이 해군력은 중국의 해양팽창 정책과 함께 경쟁적으로 증강하고 있다. 방심하면 우리는 주변국 해군력에 봉쇄될 수 있다. 과거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대처하지 못해 나라를 잃었던 뼈아픈 역사를 겪었다. 쓰라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을 뛰어넘어 밖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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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단계별 해양방위 경계선 확장 전략>


일반적으로 세계 지리는 육지를 중심으로 국가 방위와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대륙국가, 바다가 기반인 해양국가로 분류한다. 대표적인 대륙국가로 러시아와 중국을, 해양국가는 영국과 스페인 등을 꼽는다. 이런 기준은 15세기 대항해시대 유럽 해양강국들이 세계의 패권을 쟁취하며 생겨났는데, 최근 들어 다시 분류해야 할 상황이다. 국가이익이 바다에 있음을 인식한 일부 나라가 지정학적 여건과 관계없이 해양국가를 자처하고 있어서다. 해양팽창 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이 대표적이다. 고전적인 국가안보와 경제 패러다임까지 흔들고 있다.

중국이 해양국가로 변모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15세기 중국은 중화(中華)사상을 내세운 자타가 공인하는 강대국이었다. 중국의 발달한 문명과 상품이 조공무역을 통해 해외로 전파됐다. 당시 명나라 정화(鄭和)함대는 1500t(추정) 규모의 크고 작은 함선 62척과 2만 7000여 명의 선원으로 구성됐었다. 250t급 함선 3척에 88명의 선원으로 구성된 콜럼버스 탐험대와 크게 비교된다. 이처럼 명나라는 대규모 선단으로 동남아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대양을 아우르며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그러던 중국이 청나라 때 해상활동을 금지했다. 그 결과 중국은 서구의 해양진출과 침략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 아편전쟁(1840~1842)과 청일전쟁(1894년)의 패전을 거쳐 난징학살(1937년)을 당해야만 했다. 지금 중국 해양팽창 정책엔 과거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깔렸다.

중국의 해양팽창 정책은 마오쩌둥 이후 구체화했다. 1982년 중국 해군사령원(해군참모총장) 류화칭(劉華淸)이 만든 도련전략(A2AD·반접근/지역거부)이 그것이다. 이는 중국 관할해역을 단계적으로 중국 연안에서 남중국해, 남태평양까지 확장하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육상 및 해상 비단길을 뜻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구상에 따라 인도양과 태평양 전역으로 확대할 기세다. 중국은 국제법이나 주변국과의 분쟁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공해상에 인공섬을 만들어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해경이 외국 선박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법(해경법)까지 만들어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불법 장악 해역 통제할 가능성

중국의 해양 팽창정책은 한반도 서해까지 뻗치고 있다.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서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의 서해 해상경계선 획정에 대비해 미리부터 서해를 실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명분을 쌓고 있다. 최근 중국이 서해에 대규모 선단으로 불법 조업하면서 우리 선박에 대해선 해양활동을 제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년 전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베트남과 필리핀 선박을 쫓아냈던 행태와 유사하다. 이와 관련해 필자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 2013년 해군참모총장 시절 중국 해군사령원 우성리(吳勝利) 초청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했을 때다. 당시 우 사령원은 필자와 회담에서 외교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요구를 했다.

그는 “대한민국 해군 함정은 절대로 서해에서 동경 124도 서쪽으로 넘어와 작전하지 말라”고 말했다. 턱없는 요구에 필자는 강하게 항의했다. 첫째, “124도 서쪽 해역은 중국 영해가 아닌 공해로 국제법상 누구도 해상 활동을 제한할 수 없다.” 둘째, “6·25 전쟁 이후 북한은 간첩선을 124도 서쪽(중국 방향)으로 우회 침투시켜 우리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했다. 당신이라면 124도 서쪽에 대해 탐색작전을 하지 않겠는가?”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북한이 중국의 말은 잘 들으니 지금이라도 더는 간첩선을 침투시키지 않도록 보장한다면 우리도 자제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우 사령원은 “한국 입장을 이해한다”면서도 “당과 인민이 이 문제로 중국 해군을 질책하니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우 사령원의 말은 중국이 서해를 중국의 내해로 간주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중국이 해양팽창 정책을 완성하면 불법으로 장악한 해역을 통제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물론 주변국의 해운과 수산, 해저자원 개발 등 해양활동이 이루어지는 해역이 그 대상이다. 최악엔 중국이 남중국해 등 일부 공해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며 통행세를 물게 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는 치명적이다. 남중국해는 우리의 해상수송로다. 안전한 해상로 확보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이런 중국 해양팽창 정책은 미국과 정면충돌이 불가피하다. 최근 항행의 자유를 놓고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갈등은 앞으로 더 큰 재앙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중국의 해양팽창 정책은 역내 주변국들과 군비경쟁, 특히 해군력 증강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해군력을 키우고 있다. 러시아도 해군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하고 있다. 구한말 한반도 주변 양상과 유사하다. 더구나 한반도 주변 해역에는 해상경계선 획정, 영토문제 등 갈등요인이 잠재해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이런 갈등 와중에 한국이 희생돼선 결코 안 된다. 혹자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이 한국을 도울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오산일 수 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북한 위협 대비용이다. 따라서 한국은 스스로 해양 위협에 대처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주변국 추세 고려, 경항모 필요

이런 점을 고려해 몇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범국민적 해양의식 고취다. 우리의 안보와 미래가 걸려있는 바다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삶의 터전임을 국민이 인식해야 한다. 1902년 설립된 미국 해군연맹(Navy League)은 미국민에게 해양의식을 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상금 1만 달러를 해군연맹에 기부하기도 했다. 1895년 설립된 영국 해군연맹은 ‘2국 표준주의 해양법’(어느 두 나라의 해군력을 합한 것보다 영국 해군이 강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정해 해군력 증강에 기여했다. 한국도 미국과 영국을 벤치마킹한 1997년 대한민국 해양연맹(Seapower League)을 창립해 우리 국민의 해양의식을 키우고 있다. 범국민적 동참이 필요하다.

둘째, 더 불안정해질 해양안보 환경에 대비해 해군력 증강이 시급하다. 해군은 함정 건조 등에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해군의 전략적인 기여를 고려하면 해군력 증강에 국민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다. 주변국들의 경쟁적인 항공모함 확보 추세를 고려하면 경항모는 중요하다. 항모는 분쟁 현장에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전략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서해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노림수에 치밀하게 대처해야 한다. 단순한 갈등을 넘어선 해상주권 문제여서다. 정부는 물론, NGO와 국민도 나서야 한다. 해양 수호를 위한 국민 목소리와 의지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다.